[방구석 잡설-수염의 인문학]
1. 수염을 기른지 3주 정도가 된 것 같다. 자로 재보니 대략 평균 8mm 씩 자라났다.
이쯤 되면 머리카락과 성장속도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듯 싶다.
그 와중에도 매일 볼에 나는 수염은 면도를 하고 있으며, 며칠 전에는 라인을 맞춰 수염라인을 다듬기도 했었다.
2. 동양인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기에, 수염이 난 모든 부분이 다 골고루 촘촘하게 난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 찢어져서 꿰멘 상처 부분은 당연히 비어있고, 군데군데 듬성하게 난 곳도 있다.
3. 3년 전 길렀던 수염과 비교해보면, 흰수염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특히 입술과 턱선 사이.
4. 그런데 재밌는 것은... 오늘 하고 싶은 말은...
거울 앞에 다가가 이 수염들을 자세히 살펴보다 보면, 어떤 부분은 이제야 막 자라기 시작한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 끝모양이 뭉툭한 것으로 보아서는 분명 처음 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최근 1년 이상 수염을 쪽집게 등으로 뽑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분명 새로 생긴 모근도 아니요, 똑같은 조건에 있던 것들인데, 남들이 8mm씩 자라난 후에야 고개를 쳐들고 솟아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5. 내 정신작용과는 관련 없는 신체 조절의 신비인 것인가? 일부는 아껴두었다 천천히 내보내는? 10명의 아들이 애굽에 식량을 구걸하러 떠날 때 야곱이 그 막내아들 베냐민은 아껴뒀다가, (야곱인지 몰랐던) 야곱이 그를 데려오라고 명령하고서야 나중에 억지로 데려갔듯이?
6. 한쿡 사람들도 이제 꼭 아티스트나 스타일리스트가 아니더라도 누가 맘대로 좀 수염을 기르든 말든 뭐라 하지좀 않았으면 좋겠다. 꼭 꽁지머리 묶은 운동권 목사 아니어도 목사가 수염 좀 기르면 어떤가?
가뜩이나 머리숱도 없는데, 두부(頭部)에 체모 균형을 맞추려는 보상적 시도도 안 되는가?
7. 물론 동양인의 종특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서양인들은 그 수염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아서 매일 면도하다간 피부도 다 갈려나갈 수 있는 사람들도 많지 않은가?
그러니 그냥 소설 하나 쓰자면, (조선시대는 뭐 아예 손을 못 댔으니 그러려니 하고) 한국인이 면도를 시작한 이후, 길러봤자 듬성듬성...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 이방 수염 유형이 많아서... 여성들에게 매력어필도 못하고 도리어 외모 자존감의 하락을 낳았는지도 모르겠다.
8. 3년 전 수염을 잔뜩 길러서 한국에 돌아왔을 때 원래 계획은 이 수염을 그대로 가지고 교회 강단에 서는 것이었다. 청년들에게 (외모 포함) 비본질적인 것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고 설교하기 위해서...
그런데 의외의 복병으로 인해 주일이 오기도 전에 수염을 깨끗하게 밀어버렸는데, 그 이유는 아들 때문이었다. 뽀뽀를 해주려고 얼굴을 들이밀면 자꾸 손으로 밀어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전은...
면도를 해도 한동안 그랬다는 것이다...(오랜만에 만나는 아빠가 그냥 어색했던 것이었다...)
_what f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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